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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남북관계,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짜자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남북관계,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짜자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12.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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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이 코로나에 짓눌렸던 2020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끔찍한 시간들”이라고 고백했듯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는 김정은 체제의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9일 보도에서 2020년 핵심 키워드로 코로나19를 꼽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동신문은 “돌이켜보면 올해에 우리 인민의 전진을 가로막은 도전과 장애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새해 정초부터 하루하루, 한 걸음 한 걸음이 시련에 찼던 투쟁”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신문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렀다고 밝히는 대목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도 느껴진다. 특히 연말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북한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감염력이 매우 강한 새로운 변종의 악성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되고 있는 것”이라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북한의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은 상상 이상이다. 지난 2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지기 시작하자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초특급 방역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또 7월 탈북민이 월북해 개성에 진입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특별경보를 발령하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격상했다. 

북한이 최근 초특급 방역 조치를 다시금 시행한 것도 겨울철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재유행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겨울철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상방역법’ 제정 사실을 공개하고 감염병 전파 속도와 위험성에 따라 방역 등급을 1급·특급·초특급 세 단계로 분류하는 등 방역과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초특급은 지상·해상·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봉쇄하고 모임과 학업을 중지하거나 지역을 완전히 봉쇄하는 경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3단계에 해당한다. 이는 열악한 방역체계나 보건·의료 실태를 스스로 잘 아는 북한이 ’한번 뚫리면 끝장이다‘라는 우려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은에게 2021년은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고 권력을 넘겨받은 지 10년이 되는 해다. 무엇인가 구체적인 실적을 가지고 평가를 받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물론 북한의 선전선동 매체들은 김정은 찬양과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김정은 입장에선 엘리트와 주민에게 어느 정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군사퍼레이드 연설에서 “단 한 명의 악성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하니 이것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북한이 코로나 청정지역임을 주장했다. 자신과 고위 당 간부는 물론 수만 명 주민까지 마스크를 모두 벗은 것도 이런 자신감의 표현과 대외 선전 차원일 수 있다. 하지만 속사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는 어려운 북한 경제와 주민 살림살이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노동당 창당 75주년을 맞는 2020년을 이른바 자력갱생을 기치로 경제력 다지기에 나서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본격적인 착수도 하기 전에 코로나19라는 충격파가 닥쳤다. 북·중 국경을 통한 교역이나 밀무역도 불똥이 튀었고,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북·중 간 비공식 거래가 모두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대북지원과 남북 보건·의료 협력에 대한 목소리가 당국은 물론 의료계와 민간 차원에서도 높아지고 있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조선 것을 받지 말라“는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엄정 대처를 지시하면서 “어떤 지원도 허용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11월 19일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라며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북한은 핵 개발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했다.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더 큰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코로나19로 난리법석인 국제사회를 보면서 핵무기의 효용이 반감한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2021년, 그 고립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남북관계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남북공동질병관리본부 설립과 감염병 핫라인 구축, DMZ(비무장지대) 접경 지역 평화병원 설립 등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한 남북협력 방안이 적극 검토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