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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세자매] 가장 솔직한 나, 비로소 ‘우리’
2021. 01. 19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세자매’(감독 이승원)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리틀빅픽처스
영화 ‘세자매’(감독 이승원)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리틀빅픽처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을 소재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큰 사건도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가슴에 ‘콕’ 박혀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세자매’(감독 이승원)다.

신도시 자가 아파트, 잘나가는 교수 남편에 말 잘 듣는 아이들까지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운 것 없어 보이는 둘째 미연(문소리 분). 독실한 마음을 가진 성가대 지휘자로 성심껏 일하며 나무랄 데 없는 가정주부의 면모를 뽐내지만, 언제나 ‘가식’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손님 없는 꽃집을 운영하는 첫째 희숙(김선영 분)은 대들며 반항하는 딸과 가끔 찾아와 돈만 받아 가는 남편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상처가 곪아 문드러져도 입에 밴 ‘미안하다’ ‘괜찮다’는 말로 버티며 살아간다.

날마다 술과 함께하며 365일 취해 있는 셋째 미옥(장윤주 분)은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남편과 의붓아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 없다. 안 취한 척하며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자꾸 실수를 반복하며 인생은 꼬여만 간다.

각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던 세 자매는 아버지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고, 그곳에서 그동안 꽁꽁 숨겨둔 아픔과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쌓아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며 폭발하고 만다.

‘세자매’에서 열연한 문소리(왼쪽)과 김선영(오른쪽 위), 장윤주. /리틀빅픽처스
‘세자매’에서 열연한 문소리(왼쪽)와 김선영(오른쪽 위), 장윤주. /리틀빅픽처스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영화 ‘소통과 거짓말’ ‘해피뻐스데이’ 이승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같이 자랐지만 너무 다른 개성을 가진 자매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내 큰 공감을 안긴다. 세 자매는 실제 어딘가 존재하는 듯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이들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가다 보면, 완벽한 척하는 미연에게 괜찮은 척하는 희숙에게도 안 취한 척하는 미옥의 모습에서조차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은 모두 모인 자리에서 꾹꾹 담아놓은 감정을 폭발시킨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던 미연을 시작으로, 항상 남의 눈치를 보던 희숙이 처음으로 감정을 분출하고 미옥 역시 폭주한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가장 솔직한 ‘나’와 마주한 이들은 비로소 진짜 ‘우리’가 된다.

공감가는 이야기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세자매’. /리틀빅픽처스
공감가는 이야기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세자매’. /리틀빅픽처스

가족이란 그런 존재다. 상처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오랫동안 묵혀둔 아픔과 상처가 거짓말처럼 치유되는 것. ‘세자매’가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응원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세자매’를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다. 문소리는 미연의 이중적인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능청스러움과 진지함을 오가는 노련함으로 웃음과 묵직한 여운을 동시에 안긴다. 김선영은 괜찮은 척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희숙을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로 완성, 극의 무게를 더한다.

셋째 미옥을 연기한 장윤주도 좋다. 파격적인 외적 변신뿐 아니라 눈빛부터 표정, 몸짓까지 미옥 그 자체로 분해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의 웃음 코드 역시 그의 몫이다.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과 능글맞은 매력으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미옥을 완성해냈다. 배우 장윤주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이승원 감독은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보는 이들이 저마다의 공감과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다양한 담론들이 생성될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러닝타임 115분, 오는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