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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이슈&팩트⑰ 대선 변수] 막판 변수와 당락의 함수관계
2017. 05. 02 by 신영호 기자 jibain0125@sisaweek.com
▲ 바른정당 13명의 의원들이 단일화를 주장하며 탈당 선언을 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선대위원장 주재 원외위원장 간담회가 끝난 뒤 김무성, 정병국 공동선대위원장 등 원외위원장들이 대선 완주를 다짐하며 '기호4번'을 외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2일 바른정당 의원 13명의 탈당 선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체제가 굳어지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상승세를 타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바짝 추격하는 것으로 확인된 여론조사가 발표된 시기에 나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들의 탈당은 현재 1강2중2약으로 정리되는 막판 5자 대선 구도를 더 늦기 전에 실질적 보수-진보 대결로 재편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바른정당을 탈당한 장제원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시 한 번 보수의 결집을 이뤄내는 것이 (탈당의)가장 큰 대의”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번 선거 목표에 대해 “집권이 목표지만 노력해서 (만약)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견제할 확고한 제1 야당이 된다면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바른정당 탈당파의 ‘홍준표 지지’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홍준표 후보의 오름세는 지속되겠지만, 현재의 1강 구도가 양강으로 재편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날 본지 전화통화에서 “홍준표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역전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바른정당 탈당파 지지만 갖고)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도 “홍준표 후보는 연휴 전부터 조금씩 지지율 상승 탄력을 받았다”면서 “그동안 안철수 후보가 2위 경쟁에서 앞서있었는데 이제는 같거나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며 “1강 구도는 결빙됐다고 보는 게 객관적”이라고 했다.

이 전문가는 “자체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올라가고 있고 부동층의 표심도 일부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과거 선거는 단일화 등 변수가 승패에 영향을 줬지만 올 대선은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홍형식 소장은 “1강 구도가 깨지려면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야 한다”면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지지율이 15%이상 올라가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일정 부분 줄어든 상태에서 홍준표 후보가 지금 상승세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 외에 고령층 투표율 상승 등 홍준표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도록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1-2위 경쟁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로 홍준표 후보로의 보수 결집이 표의 유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후보 지지율이 사실 35~40% 사이 박스권에 갇혀 있다. 추가 상승이 만만치 않다. 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보수후보 단일화 불씨가 완전히 꺼진 상태가 아니고, 고연령층 투표율 등 막판 변수가 남아 있어 선거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역대 대선 당락 가른 변수는?

그렇다면 역대 대선에서 막판에 돌출된 변수가 당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실제 역대 대선을 되짚어보면 당락을 가른 건 선거 막판 즈음 불거진 돌발 변수였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부터 2012년 18대 대선까지 북한 이슈, 단일화, 후보 개인의 문제가 판세를 출렁이게 한 변수로 손꼽힌다.

북한 이슈는 2000년 전까지 선거의 중대 변수였다. 13대 대선이 치러진 1987년 발생한 KAL858기 폭발 사건은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선 하루 전 12월 15일 폭파범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하는 장면을 TV생중계로 내보내 안보 경각심을 높였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기획부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 사건을 발표하며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측근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는 노태우 정부 도움으로 김대중 후보를 간발의 차로 이겼다.

1997년 15대 대선 때 대세론을 등에 업은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후보는 이른바 병풍으로 청와대 입성에 실패했다. 이회창 후보 측은 두 아들의 군 입대 면제 특혜 의혹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김대중-김종필 연합 전선에 무너졌었다.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는 안보 이슈가 힘을 잃고 단일화가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2002년 16대 대선 때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대세론에 취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은 신의 한수로 회자되고 있다. 선거 막판 정몽준의 단일화 철회도 선거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이회창 후보는 선거 4주 전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키며 앞서나가다 역전 홈런을 허용한 꼴이 됐었다.

단일화가 다 잘된 건 아니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서로 상처만 남긴 채 박근혜 정부로의 정권연장을 지켜봐야만 했다. 두 사람 간의 앙금은 2017년 19대 대선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