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지난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상향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N번방 방지법’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연미선 기자  디지털 성범죄 근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근절’을 이야기하며 여러 대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크지 않다. 전문가들은 결국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인식’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고 꼽는다.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로 시대적 요구에 따라 ‘N번방 방지법’이 국회서 통과됐다. 성착취물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 확대와 수위 상향을 골자로 하는 ‘N번방 방지법’은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법정형 상향에 있어서 실효성 있는 처벌을 받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 법정형 상향… 여전히 아쉬운 ‘법원 판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지난해부터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형량을 판단한다. 나무여성인권사무소에서 발표한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판례분석 자료집’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2020년 이후 벌금형보다 징역형 선고 비율이 높아져 전반적으로 선고형이 상승하고 처벌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다만 한계점도 여전하다. 범죄가 발생하는 공간이 ‘디지털 공간’인 만큼 증거가 삭제됐거나 해외 플랫폼을 경유해 협조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증거 불충분 혹은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판단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리셋이 최근 발행한 58주차 ‘더리더’에 따르면 올해 불법촬영물 시청‧소지죄로 유죄가 확정된 193건 중 단 12건만 실형이 선고됐다. 또한 조주빈과 공모해 피해자를 협박하고 성착취물 제작‧유포 등의 혐의를 받은 대화명 ‘사장수’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가담 정도가 중하지 않고 피해자들과 일부 합의했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전문가들은 ‘N번방 방지법’을 통해서 형량은 충분히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사회와 법원의 인식이다. 법에 규정된 형량은 늘어난 것에 비해 형의 양정에 대한 재량을 가진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경미하다고 판단한다면 ‘N번방 방지법’은 오히려 ‘무죄’가 많아지는 부작용을 낼 수도 있다.

리셋도 형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재판부의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리셋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형량을 더 높여버리면 오히려 해당 범죄가 ‘징역형을 살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법부로 인해 소극적으로 기소되거나 유죄를 입증하기 더욱 힘들어지는 일이 발생한다”며 “지금도 코로나19로 인한 격무에 따른 스트레스 등을 유리한 정상이라고 나열하며 ‘선처’를 남발하는 것이 현 하급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 “신고 이전, 선고 이후의 피해자 상황에도 관심 가져야”

지난해 있었던 디지털 성범죄 판례분석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 활동가는 디지털 성범죄가 구조적 폭력이 아닌 개인의 일탈‧부주의 정도로 보고 있는 수사사법 기관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이후의 상황에도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고 짚었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해야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모욕‧좌절을 경험한다.

공익인권법재단 백소윤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가해자가 특정이 돼서 운 좋게 처벌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형사 절차 이후에 피해자가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 보장을 위한 제도”라며 “피해자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부족이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어 “전반적으로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에 대한 것과 어떤 제도를 통해 피해자 지원을 더 입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둘 다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소윤 변호사는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본다. 백 변호사는 “스토킹 방지법에서 신고 이전 단계에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가 지속될 경우 응급조치나 임시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것에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물론 스토킹 처벌법과 성폭력 처벌법은 체계가 다르지만 이를 활용해 (불법촬영물 관련에 대해서는) 추가 가해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전문가들은 결국 ‘인식 개선’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해가 발생하는 지점부터 피해 신고 후 수사과정, 재판과정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무척 높아진 것에 반해 피해자들의 경험하는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인식이 같이 따라갈 때 유의미하다. 실효성 있는 인식 개선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