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인간 역시 이 같은 진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숨이 다한 인간은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은 어떨까.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이지만, 우리는 그 끝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아주 잠깐, 너무나 쉽게 사용한 물건들 중 상당수가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머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간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물건들, 그것들의 끝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두는 99.8% 찌꺼기 쓰레기를 남긴다. /사진=뉴시스, 그래픽=권정두 기자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두는 99.8% 찌꺼기 쓰레기를 남긴다. /사진=뉴시스, 그래픽=권정두 기자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우리나라에 붙는 또 하나의 별칭은 ‘커피 공화국’이다. 커피의 발현지나 주산지도 아니고, 커피 문화가 오래된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표현에 물음표를 붙이긴 어렵다. 거리에 즐비한 카페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커피 소비량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만 명당 커피전문점 수는 1,834개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2위 일본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 1인 평균 연간 커피소비량도 367잔으로, 프랑스 551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임에도 커피시장 규모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때로는 시원함을, 때로는 따뜻함을, 또 때로는 여유를, 때로는 바쁜 일상 속 에너지를 안겨주는 커피는 이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하지만 남다른 규모의 커피 소비는 이에 따른 쓰레기 문제 역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용하는 플라스틱 일회용컵과 빨대는 우리사회의 주요 환경문제로 지목돼왔다. 이에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이 제한되고, 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로 대체되고, 테이크아웃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도입되는 등 관련 대책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커피가 남기는 쓰레기는 비단 일회용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쓰레기가 있다. 바로 커피 찌꺼기, ‘커피박’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마시는 커피는 갈은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원액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원두의 99.8%는 커피 찌꺼기로 남게 된다. 커피 한 잔에 보통 15g~20g의 원두가 사용되는데, 극소량만 제외하고 찌꺼기로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커피박은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대부분 별도 수거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담겨 배출 및 수거돼왔다. 하루 300kg 이상의 커피박이 발생하는 곳만 사업장 폐기물로 별도 관리됐을 뿐이다.

물론 커피박이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썩지 않는 등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쓰레기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배출 및 수거된 일반쓰레기는 소각 또는 매립되는데 커피박 역시 이때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특히 매립되는 커피박에서 배출되는 매탄은 지구온난화 지수가 34에 달한다. 지구온난화 지수는 이산화탄소 1kg과 비교해 같은 양의 특정 기체가 지구온난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양’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만큼, 커피 찌꺼기도 많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연간 원두 소비량은 15만 톤을 넘어서는데, 이는 커피박 역시 연간 15만 톤가량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지역에서 단 하루에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만 해도 150톤에 육박할 정도다. 우리가 저마다 매일 빼놓지 않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뒤로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커피박은 재활용 및 재자원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최근 다양한 시도들이 성과를 내고 있다. /뉴시스
커피박은 재활용 및 재자원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최근 다양한 시도들이 성과를 내고 있다. /뉴시스

다행인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커피박 자체는 그냥 버려지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존재다. 기본적으로 식물성 잔재물인 커피박은 자연분해될 뿐 아니라 유기 영양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방과 단백질, 그리고 섬유질이 많다. 때문에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가정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커피박 재활용 방법은 비료나 퇴비, 탈취제 등이다. 실제 많은 카페들이 이러한 용도로 활용하라며 손님들에게 커피박을 무료로 나눠주곤 한다. 

국내 커피전문점 업계 1위 스타벅스도 지난달 ‘커피박 화분’ 무료 제공 캠페인을 시범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스타벅스는 이에 앞서 커피박을 재활용해 만든 퇴비가 누적 생산 1,000만 포대를 돌파하는 등 사업 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커피박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보다 체계적인 커피박 재활용 방안들도 등장 및 확산하고 있다. 매일유업과 한국맥도날드, 그리고 글로벌 사료업체 카길애그리퓨리나는 지난달 사회적협동조합 ’자원과순환‘과 함께 ’커피박 자원순환을 통한 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ESG) 경영 실천 공동업무 수행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이들은 커피박 자원순환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매일유업과 한국맥도날드에서 발생하는 커피박을 자원과순환이 회수해 단미사료(원료사료)로 전환하고, 카길애그리퓨리나는 이를 배합사료로 제조해 매일유업 납품 목장에 공급하며, 커피박 사료를 먹은 가축들로 생산한 우유와 계란·고기 등은 다시 매일유업과 한국맥도날드에 공급되는 구조다. 

현대제철 역시 커피박 재자원화를 위해 잰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현대제철이 커피박 재자원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제철은 환경부와 인천시 등 10개 기관과 협약을 체결하고 커피박 공공수거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이렇게 수거된 커피박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재자원화 기관들에게 지원금과 함께 제공돼 업사이클링 제품 생산이나 서비스 제공의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현대제철은 이 같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커피박을 활용한 악취저감 연구개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커피박을 활용해 축사의 심한 악취를 저감시키는 연구를 진행 중인 경상북도 보건환경연구원에 현장 실증 연구용 커피박을 공급한 것이다. 이 같은 지원이 연구개발 성과로 이어질 경우 또 하나의 커피박 재활용 방법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더욱 획기적인 커피박 재활용 방안이 발표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민욱 박사팀과 동국대학교 김영관 교수팀이 커피박과 생분해성 플라스틱 ‘PCL’을 활용해 폐수 속 중금속을 제거하는 나노복합필터를 개발한 것이다.

이러한 커피박 재활용 및 재자원화 움직임에 발맞춰 정부는 지난 3월 커피박을 순환자원으로 인정한 바 있다. 생활폐기물로 배출하지 않고, 재활용 허가·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따라서 향후 커피박 재활용 및 재자원화는 더욱 활발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애물단지였던 커피박을 친환경 모범사례로 탈바꿈시켜 환경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커피 공화국’의 위상도 한 차원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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